soyoyu

강현주

일상생활환경과 디자인

	1998년 08월 17일 일상생활환경과 디자인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분주함과 긴박함에 익숙해 있던 내게 1989년 여름 처음 접한 스톡홀름은 한 국가의 수도라기에는 너무나 작고 정적인 도시로 비추어졌다. 마치 문화의 깊이를 간직한 아름다 운 지방의 소도시를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멜라렌 호수와 발 틱해가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물의 도시, 그 위에 한폭의 그림처 럼 아름답게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도시, 도심 곳곳에 푸른 숲과 공원이 있는 도시가 바로 스톡홀름이었다. 오래된 유럽의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스톡홀름 역시 중세이래 번성해온 구시가지와 근대화 과정에서 개발된 신도시지역, 그리고 이를 둘러싼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9년부터 1993년 초까 지 그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여름방학에는 유럽의 여러 나 라들을 여행하고 겨울방학에는 한국에 왔었다. 1990년 여름 스웨덴 국립디자인대학(Konstfack, 이하 콘스트팍)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 나는 스웨덴 남서쪽의 말뫼 시에서 열렸던 <노드포름 90>이라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박람회 를 참관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랜드 등 북구의 다섯 나라 가 참가한 이 박람회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공업 디자인, 가구 디자 인, 인테리어 디자인 뿐아니라 세라믹과 유리공예, 텍스타일 등 디 자인과 공예 전 분야의 작품들이 선보였다. 이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다섯 나라가 박람회장 한 쪽에 한채씩 지어 선보인 주택모델들이었다.그 집들 중 핀란드집은 마치 몬드리안의 작품과 게리트 리트벨트의 적·청 의자를 연상시 키는 것이었는데 필자는 이 집이 가장 디자인적이라고 생각했다. 왜 냐하면 그 집의 디자인이 컨셉면에서 가장 확실하고 형식적인 면에 서도 실험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스웨덴 집은 환경문제와 수납공간의 문제를 고려하여 기능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으나 강렬한 개성을 표출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해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노드포름 90>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당연히 각국이 선보인 주택 모델들이 화제의 초점이 되었는데 필자는 스웨덴 학생들이 너무나 평범해 보였던 덴마크 집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데 매우 놀랐다. 학생들은 핀란드 집의 경우 디자인 컨셉의 참신성이나 실험성에서 는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집의 가치는 결국 미적인 조형물로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볼 때 덴마크 집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덴마 크 집은 전통적인 집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따뜻하고 인간 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고, 북구의 전통과 현대적인 생활양식을 성공 적으로 결합시켜 당장이라도 그곳에 들어가 살고 싶게 한다는 것이 었다. 처음에는 조형적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실용적인 면과 인간적인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스웨덴 학생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 다. 그것은 아마도 디자인은 일반인들의 감수성과는 다른 무엇인가 아주 특이하고 기발한 것을 멋지게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생각때문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필자는 그들의 생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디자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것 이다. 디자인이 경제적인 가치뿐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폭넓은 디자인 인식은 스웨덴 현대 디자인을 특징짓 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이후 스웨덴 디자인은 급속한 산업화로 열악해진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생활환경을 개선하려는 문화운동 차원에서, 그리고 수공예 전통을 산업미학과 결합시킴으로써 디자인을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근대화 운동의 일환으로 발전해왔다. 스웨덴의 디자이너들은 외국과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도 자생적 디자인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고 그 결과 그들은 '스웨디쉬 모던(Swedish Modern)', '스웨디쉬 그레이스(Swedish Grace)'라고 불리워지는 독특한 디자인 양식과 디자인 전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2004-04-22 14:04:35